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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2-21 11:21
47년 전 오늘, 우리는 파독(派獨) 광부가 되었습니다
 글쓴이 : 홍종철 (76.♡.150.139)
조회 : 4,998  
권이종 수필, Source: Chosun.com



공사판에서 대학생이 내게 한마디…
'권형, 나하고 독일 갈 생각 없수?'
가난에서 벗어나려던 나…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실업자가 250만명이던 시절 하루 16시간씩 악착같이 일하며
'광부와 간호사'로 결혼식 치른 나는 '교수 광부'가 되었다.

매년 찬바람이 부는 겨울, 12월이 되면 아득한 옛일이 떠오른다. 지금으로부터 47년 전인 1963년 12월 21일, 그날은 120명의 한국 광부가 외화벌이를 위해 이역만리 독일 땅을 처음 밟은 날이었다. 1977년까지 독일에 간 광부가 7968명.

파독광부(派獨鑛夫)! 지금의 젊은이들에겐 낯선 단어겠지만, 과거 우리나라는 자원은 물론 수출할 만한 기술력도 없었기에 인력(人力), 사람도 수출했다. 광부뿐이 아니라 간호사 그리고 군인까지.

나는 1940년 오지 중의 오지 전라북도 장수에서 태어난 ‘촌놈’이다. 또한 춘궁기 보릿고개를 ‘제대로’ 겪은 빈농의 자손이다. 날마다 10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녀야 했고, 하루 두 끼 밥 먹기가 힘들어 칡뿌리·소나무 껍질·진달래꽃을 캐 먹어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릴 적부터 간직해 온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전북 전주로 가서 중학교 시험을 쳤다. 그러나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어머니는 쌀 한 가마니를 빌리려 동네 부잣집 앞마당에서 하루를 꼬박 버티셨다. 자식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으셨으면 그러셨을까? 돌아가시기 전 40여일이나 물 한 모금 못 넘기시면서도, 막내아들의 사진과 박사학위증을 품에서 안 놓으셨던 어머니였다.

간신히 고교를 졸업했지만 나이가 차 군입대 영장이 나왔고, 군복무를 마친 뒤 고향에 내려왔으나 가난의 그림자는 여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전 국민 2400만명에 실업자가 250만명이 넘던 시절이었다.

서울로 올라와 공사판에서 일하던 중 함께 일하던 한양대 공대생이 내게 한마디 던졌다. “권형, 나하고 독일 갈 생각 없수?” 파독 광부로 가자는 얘기였다.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해방되고 싶어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광산 일은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헬멧과 안전화를 착용한 뒤, 4L 이상의 물통, 무릎보호대, 충전배터리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소위 ‘막장’이라는 지하 800m 이상의 갱도로 내려간다. 숨이 콱콱 막히는 지하갱도에서 땀이 밴 속옷은 뚝뚝 물이 떨어지고, 장화 안에 가득 고인 땀을 몇 번이나 쏟아내야 했다.
아무리 안전모를 쓰고 있지만 돌이 떨어지면서 팔과 얼굴, 등에 난 상처에 석탄가루가 박히면서 그 자리가 곪고 아물면서 석탄은 그대로 있었다. 광부 문신이다. 나는 몸에 박힌 석탄가루를 일일이 파내고 타월로 빡빡 문지르기도 했지만 지울 수 없었다. 지금도 내 얼굴에는 검은 점들이 검버섯처럼 남아있다.

그런 위험 속에서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희미한 헬멧의 램프에 의존해 하루 16시간씩 연장근무를 하며 탄을 캐냈다. 막장일은 또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작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글뤽 아우프(Gl?jck auf)”라고 인사를 했을까. ‘죽지 말고 살아서 지상에 올라오라’는 뜻이다. 그렇게 악착같이 벌어서 국내로 보낸 돈이 당시 우리나라 외화수입의 3분의 1이 됐다니….

이렇게 힘든 3년이 지나 귀국을 앞둔 내게 독일 친구들 덕분에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다. 인생의 두 번째 기회였다. 독일 국립사범대인 아헨교원대에 입학한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여전했고,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되어 강제 출국당할 위기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파독간호사 출신 한 여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머나먼 타국에서 같은 고향사람을 만났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그녀를 보기 위해 40km나 떨어진 곳을 자전거로 왕복하면서 탈진해 쓰러지기도 했다. 2년 만에 우리는 황금커플이라는 ‘광부와 간호사’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고 주말이면 함께 된장국·청국장·김치찌개 등의 음식을 해 먹었다.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둘 다 아직 학생 신분인지라 집을 얻을 돈이 없어 처음에는 따로 살아야 했고, 간신히 합친 후에도 서로 학업과 생활에 바빠 아이를 독일인 가정에 맡겼다. 그러나 그만 사고로 생후 5개월 된 첫딸은 하늘나라로 갔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사랑을 제대로 베풀지 못한 죄책감에 서로 부둥켜안고 피눈물을 쏟았다. 나는 12년 만에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어 귀국했다.

‘교수가 된 광부.’ 파란만장하다고도 할 수 있는 나의 삶이지만 어느덧 고희(古稀)가 됐다. 지금도 나를 일깨워주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이었다.

함보른 탄광에 1964년 12월 대통령 부부가 찾아왔고 식순에 따라 애국가가 시작되자, 감격에 찬 광부와 간호사들이 흐느끼기 시작했고 곧이어 울음바다가 됐다. “가난 때문에 이역만리 지하 수천 미터에서 일하는 새까만 여러분 얼굴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직까지 이렇게 못살지만, 후손들에게는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 대통령의 연설에 우리는 울고 또 울었다. 육영수 여사도 한 사람 한 사람 껴안고 함께 울었다. 그날 흘렸던 뜨거운 눈물의 기억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나를 또 울린다.

홍종철 10-12-24 10:10
 76.♡.150.139 답변 삭제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명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 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쳐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싶어요. 부모님이 보고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 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였다.




광부들의 숙소 방문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해'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됐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6,7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6,7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 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는 우리들 신,구 세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 해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이렇게 눈물과 땀, 사랑으로, 가난을 극복하고자 산업혁명으로 치닫던 독재자 박정희, 그는 아내를 공산당 앞잡이의 총탄으로 잃었고, 독재자로 불리던 그 자신도 동지인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쓸어졌다.

그리고 나서 대한민국의 산업열차가 잠시 정차하는듯 하다가, 수구세력이라고 불리는 산업역군들이 계속 질주하며 오늘을 이어가고 있다. 피와 땀으로 달리던 산업열차와 함께, 이제는 우리의 아들 딸들이 이끄는 Golf, Figure Skating 이라는 새로운 Sports 열차가 온 세계를 열광케 하면서 대한민국은 계속해 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영화와 Drama 라는 문화 열차가 대기하고 있다.

대~~한! 민!국! 짝짝! 짜! 짝짝!!!!!!!!

< 펌 >
홍종철 10-12-24 10:48
 76.♡.150.139 답변 삭제  
새삶이 어렵고 힘들게 느껴 지십니까?

막장의 광부들, 시체를 닦던 간호사들이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대한민국 경제의 주춧돌이 되어 주었읍니다.

Don't give up!

지금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할지라도
나를 살릴 뿐만 아니라,
우리 후진 들에게 물려 줄수 있는  회복 이라는
귀한 유산을 캐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KC 10-12-29 01:37
 75.♡.79.202 답변 삭제  
제 딴에는 똑똑하다고, 생각이 깊다는 착각에 빠져있었지만, 어느 분(?) 의 말씀과 같이 저는 정말 아직도 철이 없나봐요.  정말 생존의 기로에서... 또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파독 광부, 간호사 또 국군장병이 있는데..저는 그깟 맥주한잔 하고 싶다, 아니 그러고 싶어도 참아보자...하고 있으니.....

아직도 멀었어요. 제가 가야할길은....하지만, 어쩌면 오늘 권사님의 간증처럼, 회복의 길이 멀지 않을지도 모르죠...  오늘 하루하루 잘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제가 받은 이 귀중한 교훈과 장로님, 권사님의 사랑을 그 또다른 어느 중독자에게 나누고 싶습니다.  이것이 나를 살릴뿐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귀한 생명을 살릴수 있는 길일줄 누가 알겠습니까?  부족하지만, 저도 할수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 장로님의 Message 정말 감사드립니다.  중독자 Choi----